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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은 가격표가 아니라 매도자 사정에서 시작한다
매수자 대부분은 이렇게 말문을 엽니다.
“얼마까지 되겠어요?”
“500만 원만 조정해 주세요.”
대부분 이렇게 흥정이 시작된다. 가격, 물건 상태, 지불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계약할 자리에 앉게 된다.
물론 중개 입장에서는 미리 매수인에게 1,000~2,000만 원 정도 의뢰 가격을 높게 브리핑하고, 그러고 나서 임장을 간다.
의뢰를 받아도 매수자는 깎으려는 마음으로 오기 때문에, 미리 가격에 여유를 두고 브리핑한 뒤 앉아서 조정해 보자고 하면서 흥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서도 살 사람은 이런 트집 저런 트집을 얘기하며 협상을 유리하게 하려고 시작부터 흠집을 잡는 경우가 대다수다.
집을 보면서도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겠네”, “수리비용이 만만찮겠다”, “예상보다 돈이 더 들겠다” 하면서 맘에 안 드는 척하기도 한다.
그리고 협상을 시작하게 되는데, 거래가 잘 안 될 때는 매수자 우위 시장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 매도자는 “그럼 바로 하신다면 500만 원 정도 조정해 드릴게요” 하고 흥정이 시작된다. 이런 식으로 가격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게 흔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실제 거래에서는 가격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지금 집을 팔려고 하는 걸까?
갈아타기를 하려는 건지, 이미 다른 집을 계약했는지,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건지, 아니면 값만 맞으면 팔겠다는 건지에 따라 협상력이 완전히 달라지고, 사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처분해야 하는 분도 있어서 흥정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같은 10억 집도 매도자 사정 따라 값이 달라진다
10억짜리 집이 두 채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집주인은 급할 게 없습니다.
집이 두 채이고 대출도 많지 않아서, 10억에 팔리면 팔고 아니면 그냥 들고 있으면 그만입니다.
이런 분에게 “9억 5천에 해주세요” 하면 대화가 길어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 집주인은 이미 새 집을 계약했습니다. 잔금일이 코앞인데, 지금 집을 팔아야 그 돈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죠.
이분에게 9억 8천만 원을 제시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집도 같고 호가도 같은데 협상 가능성은 전혀 다릅니다.
사정이 급해서 손해를 보더라도 거래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부동산업을 시작하면서 이런 경우도 있었다.
IMF 구제금융 시절에 부동산을 시작했다. 거래도 잘 안 되고 동화은행은 파산 나고 은행 금리가 27%까지 가던 시절, 입주 2년 된 아파트를 거래한 적이 있었다.
직장 관계상 매수자가 수지 사무실에 도착하면 밤 10시쯤 될 듯한데, 늦어서 괜찮겠느냐고 매도인에게 물었다.
그래도 저는 계약을 진행해야 해서 매도인을 설득했고, 늦었지만 흥정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창과 방패 얘기가 모순이라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앉은 자리에서는 팔 분에게는 팔아야 할 타당성을 설득하고, 살 분에게는 이 기회가 아니면 절대 못 산다고, 이 가격이면 초급매이니 반드시 사야 할 타당성으로 설득 또 설득했다.
밖으로 나가서 각자 설명하고 다시 흥정 자리에 앉게 하기를 수차례, 결국 새벽 2시에 계약서에 서명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마무리 짓고 밖으로 나가 저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고. 4시간 동안 창과 방패처럼 설득 또 설득해 성사시킨 성취감에 만세 소리가 저절로 나왔던 것이다.
이렇듯 흥정이란 것은 가격이 맞지 않으면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안 되면 다른 물건 찾아서 하면 되니, 일단 앉아서 서로의 요구 조건이 맞는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결과도 좋게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협상에서 중요한 건 얼마를 원하느냐보다 얼마나 급하느냐입니다.

급하다고 세게 부르면 거래가 깨진다
여기서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급하다니까 무조건 싸게 살 수 있겠지.” 아닙니다.
적당한 선에서 요구하면 고민도 하고 생각해 보고 답을 주든지 하는 건데, 터무니없이 깎으려 들면 기분부터 상해서 “더 이상 그분하고는 거래 안 해” 하고 거절부터 하게 된다.
예를 들어 10억 매물에 8억 5천을 부르면, 매도자가 아무리 급해도 기분이 상합니다.
한번 감정이 틀어지면 나중에 가격을 올려 불러도 대화 자체가 안 되더라고요.
부동산은 수억 원이 오가는 거래라 숫자만 움직일 것 같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감정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깎을 때는 이유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예산이 이 정도입니다.”
“비슷한 매물과 비교해 보니 이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오늘 조건이 맞으면 바로 계약하겠습니다.”
근거가 있는 제안은 같은 금액이어도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릅니다.

매도자가 고르는 사람은 깔끔하게 끝낼 사람이다
매도자 입장에서 가장 피곤한 매수자는 누구일까요?
10억에 하겠다고 했다가 다음 날 9억 8천을 얘기하고, 계약 당일에 또 조건을 얹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좋은 매수자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자금 준비가 되어 있고, 결정이 빠르고, 조건이 명확합니다.
매도자에게는 10억을 받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계약이 끝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가장 낮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랑 하면 깔끔하게 끝나겠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 강합니다.
물론 500만 원, 1천만 원 아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격을 깎는 데만 매달리다가 정말 좋은 매물을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부동산 협상은 가격 싸움이 아니라, 상대 상황을 읽고 내가 줄 것과 받을 것을 정확히 계산하는 과정입니다.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얼마까지 깎을까?”보다 먼저 이렇게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집주인은 왜 지금 이 집을 팔려고 할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순간, 같은 매물도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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